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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기타/리뷰리캡

[리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이하 본문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 BBC ONE(2015)

 

크리스티 여사는 수많은 여사의 작품 속에서 고립된 상황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오리엔탈 특급살인","나일강의 죽음"등의 운송수단들이나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쥐덫"등의 저택과 하숙집들은 밀폐극의 좋은 배경이 되어주었죠. 

 


크리스티 여사는 격리된 공간과 "범인은 너야!"식의 해결방식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아마도 여사의 작품 중 가장 밀폐도가 높은 작품이라면 단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일 것입니다. 외딴 섬에 초대된 10인의 이방인들이 폭풍우에 고립된 채 '마더구스'의 섬뜩한 동요에 맞추어 한 사람씩 죽어나갈 때면 독자들은 폐소공포증 마저 느낄 수 있었죠.

 


10인의 인물은 하나씩 노래대로 죽어나갑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게되죠.

 

이 고전 추리극이 크리스티 여사 탄신 125주년에 맞추어 다시 한 번 TV화 되었습니다. 네 물론 BBC고요. 1편을 감상하고 난 뒤의 소감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깔끔하군!"이었습니다. 현대의 전문가들과 노련한 배우들이 크리스티 여사의 텍스트와 만나니 시청각적 쾌감이 대단하군요. 

 

캐스팅과 트레일러를 확인해 보시려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첫 티저 트레일러by렌토

 

물론 시청각적 쾌감이라는 것이 휘황찬란한 CG나 특수효과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살아본 적 없는 시대, 만나 본 적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럴싸하고 생생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죠. 콘월 등지에서 촬영된 아름다운 경관도 이 잘 짜여진 잔혹극에 역설적인 풍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화면 때깔이 아주 곱습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주로 인물의 캐릭터를 소개하고 갈등관계를 구축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소설같은 구체적인 묘사와 서술 없이도 대화와 행동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어떤 인간인지 하나씩 알아갈 수 있었죠. 크리스티 여사가 만든 이 끔찍한 캐릭터들은 멋진 캐스팅에 힘입어 생생하게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병정 섬"에서의 첫 만찬

 

연출과 각색이 잘 되었다는 점을 빼놓아서는 안되겠지요. 주요인물들의 대사 한마디 없이 사건 전개의 단서들을 흩뿌리는 초반의 10여분이 아주 훌륭하지 않았나요? "초대장" 장면이나 성우의 "기소장 녹음" 장면이 특히 인상깊었어요. 전자는 영상의 장점을 잘 활용했다는 점에서, 후자는 효과적인 각색이라는 점에서요. 

 


초대장은 U.N.Owen이 보냅니다. "언노운(unknown)"의 말장난이죠.

 

인물과 사건을 소개하며 서서히 고조되던 긴장감은 정체불명의 음반에 녹음된 각자의 죄목이 낭독되며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피고인들끼리의 한바탕 비난과 변명이 오가고 난 뒤, 드디어 기소에 대한 첫번째 판결/집행이 이루어집니다. 하나 가고 아홉남았군요.

 


녹음된 기소문이 낭독되자 등장인물들은 동요합니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가득한 첫 밤이 지나고 아침을 맞이한 것은 여덟 명뿐이었습니다. 충격으로 쓰러진 부엌데기, 로저스 부인이 끝내 일어나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극의 시작과 함께 시청자에게 각인되었던 클레이슨 양은 식탁에 놓였던 10개의 인형 중 두 개가 사라진 것을 발견합니다. 

 


7개 같아도 잘 세어보면 8개입니다. :D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이미 여러번 영상화, 연극화 되었습니다. 작품의 플롯이나 트릭은 여사의 후배들이 수도 없이 변주하고 오마주해왔고요. 따라서 오리지널이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지는 역전 현상이 느껴질만 한데도 여사의 원작의 힘이 워낙 대단해서인지 에피소드를 감상하는 내내 강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살짝 과도한 듯한 배경 음악은 조금 거슬렸지만 뭐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무섭지,무섭지!"하며 전달하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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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것도 사실 크리스티 여사에게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습니다. ​

 

BBC의 3부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팬이건 아니건 좋은 미스테리를 즐기는 분이라면 꼭 찾아 볼만한 미니시리즈입니다. 전설적인 원작을 바탕으로 보수적이지만 효과적으로 각색되고 연출되었어요. 배우들의 앙상블이야 말해 뭐합니까. 그냥 감상하시라. :-)

 

사족) 모티브가 되었던 마더구스의 동요는 10개의 "인디언 인형" 혹은 "깜둥이 인형", 종종 "병정 인형" 등으로 전래되고 있습니다. 원작이 발표된 39년이야 "깜둥이 인형"도 괜찮았겠지만 2015년에 와서는 선택지가 병정인형 밖에 남지 않은 셈이죠.  




이 글은 http://tailorcontents.com/ 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